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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녹는 듯한 미소의 노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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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저작권 보호 대상입니다.

눈이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에 피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꽃.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동백의 꽃말은, 사랑받고 싶은 기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누구보다 강하게 가지고 있던 이순덕 할머니를 생각나게 합니다.

할머니는 한국 독립으로부터 53년 후인 1998년,
시모노세키 판결을 이기고 일본의 법정에서 역사적 사실을 처음 인정시킨 분입니다.
역사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매운 시간을 견뎌낸 할머니는 추운 겨울에도 아름답게 피는 「동백」과 닮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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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순덕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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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생의 이순덕 할머니께는
일본인에게 속아 017세~18세경 중국 상하이에서 3시간 떨어진 곳까지 끌려가,
약 7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일본군의 위안소에서 다양한 폭력을 받아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셨습니다..
정신 상태도 흐려지시고, 몸이 약해졌습니다.
이러한 위안소에서의 만행에 의해, 할머니께서는 신체 뿐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갉아 먹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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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방 후 조선인 무리와 섞여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아픔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는 가정부로 일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0세를 넘어서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에 악몽 같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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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할머니는 1992년도에 다른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시모노세키에 가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국가 배상, 명예 훼손의 인정」등을 요구하고, 길고 엄격한 법정 투쟁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차세대에 올바른 역사를 남기고 싶었던 하르모니는 모든 과정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위안부 피해자이신 할머니들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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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칭 '관부재판'이라 불리는 소송의 일심으로,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이겼습니다.
원고 중 한 명이었던 이순덕 할머니께서는 
최고령의 생존자로서 끝까지 증언 활동과 법적인 싸움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이순덕 할머니의 모습은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노력하는 동백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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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계절에 가장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역사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이순덕할머니.
마지막 순간까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이순덕 할머니의 뜻을 잊지 않고 계승해 갑니다.

* 故 이순덕 할머니께서는 2017년 4월 4일 별세하셨습니다.

MARYMOND

꽃 할머니 프로젝트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용기를 내어 인권 운동가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개개인의 삶과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휴먼 블랜딩 프로젝트입니다.
개개인의 삶에 맞는 고유의 꽃을 헌정함으로써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해준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 그리고 할머니의 삶이 영원히 존경받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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