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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덧없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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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에 꽃을 피우는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복숭아꽃은 故 박차순 할머니의 미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봄의 방문과 함께 피는 복숭아 꽃은 표면에 많은 돌기가 있고 빛이 난반사되어 어떤 꽃보다도 반짝반짝 빛납니다.
겨울 바람처럼 힘든 인생 속에서도 따뜻한 봄의 마음을 유지한 故 박차순 할머니는 복숭아꽃과 닮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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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차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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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15일, 꽃이 피는 봄에 태어난 박차순 할머니께서는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10세가 되기 전부터 봉공에 나섰다.
그리고 17세가 되는 해에 민며느리 (장래 아들의 아내로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데려와 키우는 소녀)되었으나,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광주로 도망치셨습니다.
광주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곳, 점주에 의해 매춘업자에게 팔려, 어느 날,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중국의 호남성에서 2년을 넘는 위안소 생활을 강요받은 할머니는,
23세경 감시가 느슨한 틈에 위안소에서 도망치셨습니다.
그러나 위안소에 있으셨던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할머니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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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국 현관의 농촌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 심신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박차순 할머니께서는 양녀를 애정으로 키웠습니다.
그 후, 딸과 함께 『22』라는 중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출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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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로 끌려간 후 결국 고향의 땅을 밟지 못하셨습니다.
긴 이국 생활로 한국어는 잊어 버렸습니다만,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시며,
아리랑이 흐르면 눈물을 흘리며 흠뻑 빠진 박차순 할머니.
「할머니 예쁘네요」라는 한마디에, 또 잠시 동안 벚꽃색의 미소가 만면에 펴진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그리워하고 있던 고향에도 봄이 되면 복숭아의 꽃이 피어 넘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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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고향이 그리워… 고향이 좋다」

고향에 대한 생각을 모으고,
아리랑을 들으면 눈물이 나오면 말씀하신 하르모니.
어려운 삶에서도
언제나 따뜻한 봄의 마음을 지닌 박차순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故 박차순 할머니께서는 2017년 1월 18일에 별세하셨습니다.

꽃 할머니 프로젝트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용기를 내어 인권 운동가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개개인의 삶과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휴먼 블랜딩 프로젝트입니다.
개개인의 삶에 맞는 고유의 꽃을 헌정함으로써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해준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 그리고 할머니의 삶이 영원히 존경받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MARY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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