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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

숨길 수 없는 넘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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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저작권 보호 대상입니다.

용담은 그 안에 수많은 꽃을 안고 있기 때문에 쓰러져도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라는 꽃말에서 안점순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슬픔 속에서도 평화를 목표로 하는 정의의 행동을 그만두지 않은 할머니께서는
시베리아의 초원에서도 아름답게 피는 용담과과 똑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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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점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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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태어난 안점순 할머니께서는  14세가 되는 해,
정미소 앞에 모이라는 동네 방송을 듣고 나가 강제 연행되었습니다.
그 후 기차를 타고 중국 내몽고 자치구로 이동하여 4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았습니다.

한국 독립 후 위안소에서 나왔는데 몇 달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중국 땅을 방황하셨습니다.
1946년 중국 천진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여 고향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헌신적인 간병으로 몸은 회복했지만, 6.25전쟁이 발발, 대구로 피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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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는 조카가 있는 수원으로 거주했습니다.
이듬해인 1993년, 가족 중 한 명이 할머니께서 위안부 피해자임을 신고하도록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하게 되었습니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괴로운 기억은 할머니의 마음을 무겁고,
굳게 닫히게 해, 신고한 후에도 오랫동안 피해자로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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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닫으면서도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할머니의 뜻은 숨길 수 없어 흘러나왔습니다.
선두에 서서 발언을 하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수요일 시위를 비롯해 인권캠프, 아시아 연대회의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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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숨길 수 없는 마음

"이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면서 누군가가 찾아오면,
있는대로 다 주시던 한 할머니.
슬픔 속에서도 평화를 목표로 하는 정의의 행동을 그만두지 않은 할머니를 
존경합니다.


*故 안점순 할머니께서는 2018년 3월 30일에 별세하셨습니다.

MARYMOND

꽃 할머니 프로젝트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용기를 내어 인권 운동가가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개개인의 삶과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휴먼 블랜딩 프로젝트입니다.
개개인의 삶에 맞는 고유의 꽃을 헌정함으로써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해준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 그리고 할머니의 삶이 영원히 존경받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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